글로벌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새로운 금융질서를 모색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3일 개막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하루 내내 그리스 문제를 다루는데 역점이 모아졌다.
그리스 문제는 G20 정상회의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1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구제금융안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함으로써 뜨거운 감자로 부상, 프랑스와 영국, 독일은 물론 미국, 아시아 증시가 요동을 쳤고 환율도 춤을 췄다.
특히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리스 사태가 터진 지 하루 만인 2일 칸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파판드레우 총리와 회동, 국민투표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이미 합의된 6차분 지원금도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통보했다.
이 회동에서 프랑스와 독일 정상은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성실한 긴축정책 이행 촉구, 사전 통보 없이 제안된 국민투표 결정의 부당성, 유로존 잔류 여부 입장 표명 등을 집중 추궁하며 압박을 가했다.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G20 정상회의 의장 자격인 사르코지 대통령은 3일에도 아침부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잇따라 회동한 자리에서 유럽 채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유럽의 일부로서 러시아도 유럽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대한 금융 지원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그리스 사태 논의에서 제목소리를 못내면서 위상 하락을 보여줬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3일 오전 칸 도착 직후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유럽 금융위기 대처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힘을 보탰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날 마리오 드라기 신임 총재 취임 이후 열린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개월 만에 1.50%에서 1.25%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것도 그리스 국민투표 문제를 감안해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리스 문제 골머리 아파요"
프랑스 칸의 G20 정상회의에 앞서 유럽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회의가 2일(현지시간) 마련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둘째줄 왼쪽 두번째)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앞줄 오른쪽)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둘째줄 오른쪽 두번째)이 메르켈 총리를 쳐다보며 뭔가 말하고 있다.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날 오후(현지시간) 야당이 제안한 구제금융안 승인을 위한 과도정부 체제로의 이전을 사실상 수용하면서 국민투표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일단 세계 경제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국민투표가 철회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날 G20 정상회의에서 그동안 논의돼온 금융거래세 도입문제와 국제 통화시스템 개혁 방안 등도 논의됐지만 그리스 문제의 시급성이 워낙 높았던 탓에 우선순위가 크게 뒤로 밀린 모습이었다.
한편, 그리스 국민투표 사태에 놀란 이탈리아 정부가 2일 긴급 회의를 열어 유럽연합(EU)에 약속한 경제개혁 조치를 조속히 실행하기로 했음에도 3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6.4%까지 치솟으면서 또다른 불안을 안기고 있다.
국채 수익률 6.4%는 독일에 비해 3배나 높은 것으로, 지난달 26일 EU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한 20% 보증안도 불충분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리스 국민투표라는 급한 불을 끈 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년 대선 가도의 탄력을 받기 위해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적 지도자로서 위기 극복 능력을 얼마나 더 발휘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