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숙기자

1년 제작 편수 1000여 편,
전 세계 관객동원 수 36억 명,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세계 1위,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를 수식하는 말들이 아니다. 인도 영화 산업의 메카, “볼리우드”에 대한 통계들이다.
할리우드와 봄베이(뭄바이의 옛 이름)의 합성어인 볼리우드-

대다수 인도인들에게 영화는 궁핍한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다. 고작 우리 돈으로 하루 1000원 정도를 버는 노동자도 돈이 생기면 극장으로 달려간다. 인도인들에게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영화관은 신전이고 관객은 신

도이며, 은막 속의 배우는 신이다.
인도판 <시네마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본 방송에는, 그 신의 영역 주변에서 살아가는 인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나와 상카르의 시네마 천국”을 통해 인도인들

이 오늘도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 그들이 믿는 이상세계로서의 영화판을 오가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생생한 열정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이성규(45세) 김은정(40) 부부는 인도 매니아들 사이에선 익히

알려진 인도 전문 저널리스트로, 지난 해 9월 초 KBS 스페셜에서 방영된 <샬림과 후세인의 캘커타 스토리>를 연출한 바 있다.

<뭄바이, 꿈의 도시>
수많은 삶의 군상들이 모여 꿈을 이루는 곳- 그래서 인도인들은 뭄바이를 "사쁘노까 사하르", 꿈의 도시라고 말한다. 뭄바이의 뒷골목은 삶과 삶들이 뒤섞인 삶의 용광로와도

같다. 혼잡한 도시, 빨래터, 호화로운 건물 그리고 거지. 그러나 뭄바이가 인도인들에게 꿈의 도시일 수 있는 건 그들의 피곤한 육체를 신전과 같은 극장 속에서 잊게 하는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은막의 여신을 꿈꾸는 시골처녀, 나이나>
힌두교 7개 성지 중 으뜸이라는 갠지스 강가 바라나시- 신인 여배우 나이나(23세)는, 그 신의 땅 바라나시에서 벗어나, 뭄바이에서 스스로 은막의 여신이 되길 꿈꾼다. 어느 날

뭄바이에서 오디션 연락이 오고, 나이나는 36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 끝에 뭄바이에 닿는다. 그녀는 뭄바이에서 여신이 될 수 있을까.

<뭄바이의 “토토”, 상카르>
영화 “시네마 천국”에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토토가 있었다면, 이곳 뭄바이 뒷골목에는 상카르(17세)와 락치미(12세) 오누이가 있다.

영화관의 영사실로 매일 도시락 배달을 하며 신과 같은 배우들을 만날지도 모른단 희망에 들뜬 상카르, 부모님이 운영하는 길거리 찻집에서 밀크티 배달을 하지만 배우에 대한 단꿈 하나로 매일 씩씩한 12살 락치미(상카르의 여동생)-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해도 한 달 동안 소년이 버는 돈은 우리 돈으로 3만원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소년은 극장에만 가면 모든 시름을 잊는다. 영화엔 신들의 세계가 있고 다음 세상에서 만날지도 모를 별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사기처럼 돌아가는 상카르의 자전거 바퀴와 그 바퀴 자국처럼 흘러가는 뭄바이 풍경 속에는 인도인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삶의 단층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